프레임의 '사이즈'를 들먹이며 "그래서 영화는 반드시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침을 튀기는 주장이 나는 불편하다. 내 집 내 공간에 여유롭게 기댄 채 아내와 이야기도 나누고 맥주도 한 잔 하며 즐기는 영화는 극장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멋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프레임 사이즈는 해당 영화 고유의 산물이 아닌 '관람 환경'에 속할 뿐인지라, 그것을 영화 평가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 수도 없지 않은가. 늘 그렇듯,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임에 구현된 영화의 '존재 이유'가 진정성을 띠고 있느냐는 점이며, 따라서 사이즈 같은 영화 밖 변수는 그 이후에 따져도 충분하다.

물론 영화관만의 매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둠을 들썩이는 매혹적 이미지, 공간의 냄새, 조용한 북적거림, 또는 연인의 손을 잡았을 때의 찌릿함…. 그 아름다운 감각들을 떠올려 본다면, 사이즈나 사운드 같은 '규모-기술적 차원' 운운하는 건, 사실 좀 많이 촌스럽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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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영화관에 관한 나의 기억은 다섯 살 즈음부터 시작됐다. 아버지는 지인이 운영하던 읍내 유일의 극장에 나를 자주 데려가셨는데, 어느 시점부터 극장 출입은 물론 진득이 앉아 감상하기를 나 혼자서도 잘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지금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혹성로봇 썬더A]를 족히 열 번은 넘게 봤다는 것 정도. '날아라 썬더A ♬' 어쩌고 하는 주제가를 입에 물고 다닌 것 같기도 하다.

그로부터 27년. 극장이 있던 자리에 버스터미널이 들어선 것도 이제는 오래전 얘기가 돼버렸다. 그렇지만 다섯 살 아이를 품어주던 어둠의 공간과 그곳을 떠돌던 묘한 설렘의 공기를 나는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엄마 품까지는 아니더라도 포근했거든. 그래서 지금도 극장 대신 놓인 그 터미널에 가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떠올린다. 극장 입구에 걸려있던 빨간 커튼, 싸구려일 것만 같은 그 천, 시큰한 냄새.

허우샤오시엔의 'The Electric Princess House'가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서 특별하게 매력적인 이유는 그래서다. 요컨대 이 작품의 영화관 안에는 동시에 흐르는 두 개의 시간이 있다. 폐허가 된 영화관 내부가 지금 현재의 시간을 가리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위를 흐르는 흑백영화는 그때 그 시절을 소환한다. 마찬가지로 나의 영화관(이름도 자그마치, 아카데미 극장이었다) 그 자체는 세월의 무게에 눌렸지만, 어렸을 적 만난 이미지의 어렴풋함에서 나는 나만의 영화관을 언제든 추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영화가 기억하는 그때 그 공기와 지금 여기와의 간극은 더 커진다. 나의 어린시절은 아주 멀리 떠나버린 걸까. 또 눈물이 나려한다. 어제 본 게 영화인지 꿈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 내 아버지가 지금의 내 나이와 같던 그 시간은, 잘 있을까. 그리워라.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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