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때는 차례를 지내고 절식을 만들어 먹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덕담을 주고받는 등 명절 본연의 일들 외에, 다른 즐길 거리도 많습니다. 나들이, 여행, 집에서 휴식, OTT 즐기기 등등. 여기에 영화관을 찾는 것도 주요 일정이 될 수 있을 텐데요.

 

볼거리가 워낙 늘어난 만큼 예전 같지는 않아도, 업계에서 추석은 여전히 중요한 개봉 시기로 꼽힙니다. 그렇다면 추석 때는 어떤 영화들이 개봉했고 또 어떤 작품을 많이 봤을까요? 지난 10년간 추석 시즌 개봉작들의 매출 순위를 통해 추석 영화관 트렌드를 살펴봤습니다.

 

※ 추석 연휴 2주 전~추석 주간 국내 개봉작 대상(2012~2021). 매출액은 해당 영화의 개봉 기간 매출 전체의 합. 자료 출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영화진흥위원회 운영)

 

지난 10년을 통틀어 추석 시즌 영화 중 매출액 1위를 찍은 작품은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입니다. 2012년 9월 극장가를 휩쓴 <광해>는 배우 이병헌이 광활한 연기 스펙트럼을 제대로 선보인 영화로도 꼽히는데요. 관객을 1,232만 명이나 불러모은 <광해>의 매출은 889억 원에 달합니다.

 

추석 영화 중 매출액 2위를 차지한 작품은 웰메이드 역사극 <관상>(매출 660억 원), 3위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김지운 감독의 액션 스릴러 시대극 <밀정>(613억 원)이었습니다. 최종 관객수는 각각 913만 명과 750만 명.

 

 

이어 563억 원의 매출로 4위에 오른 영화는 범죄 액션물 <범죄도시>였는데요. 올해 최대 흥행작인 <범죄도시2> 또한 이 1편이 구축한 캐릭터들과 화끈한 액션이 인기 비결이었을 만큼, <범죄도시>는 액션 시리즈물로서 성공적인 서막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위는 영조와 사도세자를 재조명한 사극 <사도>가 차지. 488억 원의 매출을 올린 바 있습니다. 역시 역사물인 <안시성>이 고구려 안시성 전투를 담아내며 추석 개봉작 중 매출액 6번째 자리를 꿰찼습니다.

 

 

이쯤 되니 추석 흥행 트렌드가 슬쩍 보이는 것 같은데요. 순위를 조금 더 들여다볼까요?

 

매출 랭킹 7위와 8위는 다시 한 번 정통 액션영화들의 차지. <킹스맨>의 속편 <킹스맨: 골든 서클>이 우리나라 관객 매출 410억 원,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가 매출 396억 원으로 7·8위에 올랐는데요. 9위로 집계된 화투-액션(?) 드라마 장르의 <타짜-신의 손>까지 묶으면, 전작·원작이 있는 화끈한 오락물이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어 10위 자리는 돌고 돌아 역사극입니다.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다룬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이 그 주인공. 312억 원의 매출을 거뒀지요. 하지만 보기 드문 '명작 사극'이라는 평가와는 별개로 관객은 385만 명만 들어 손익분기점(500만 명 추정)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단, 절치부심했을 황동혁 감독은 4년 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연출하며 감독으로서 명성을 드높이게 됩니다.

 

 

지난 10년간 추석 시즌 개봉작들을 매출 순위로 살펴봤습니다. 키워드가 눈에 보이는데요. 가장 선명한 건 '역사극' 혹은 '시대극'이라는 장르. 근대사를 다룬 <밀정>을 포함해 10개 작품 중 6개가 해당됩니다. 추석 하면 사극, 사극 하면 추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실제로 10년간 추석 외 다른 기간 개봉한 사극&시대물 중 남한산성보다 매출액이 상위인 영화는 <명량>, <암살>,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군함도>, <덕혜옹주>, <봉오동 전투>, <군도: 민란의 시대> 7편에 불과합니다. 6편(추석) vs 7편(비추석), 역사 장르의 영화가 추석 즈음에 개봉도 많이 하고 관객도 많이들 찾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장르 공식 및 관습에 충실한 권선징악 유의 '액션영화' 역시 추석 영화관 트렌드의 한 줄기. 10편 중 3편이 여기에 속했지요.(넓게는 '밀정'과 '안시성' 포함 5편) 이밖에 전작·원작의 성공에 힘입은 '후속작'들이 눈에 띈다는 점, 사극에 방점이 있다 보니 '한국영화'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이들 키워드의 바탕으로는 명절이라는 시기 자체에 한국영화, 한국 역사에 이끌리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아울러 남은 연휴를 편히 즐기고 싶은 마음에 보기 무난한 검증된 오락물로 향하는 관객이 많다는 것 정도를 들 수 있겠지요.

 

 

올해는 어떨까요? 추석 명절을 겨냥한 역사극은 없지만, 9월 7일에 개봉하는 <공조2: 인터내셔날>은 속편 액션(+코미디)이라는 추석 트렌드에 걸맞아 관심이 가는데요. 관객도 이에 호응해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추석 영화, 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나요?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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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여기서도.

 

[이심쩐심] 추석 연휴 때 '돈 되는 영화'는 따로 있다?

[BY 뉴스웨이] 추석 연휴 때는 차례를 지내고 절식을 만들어 먹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덕담을 주고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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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결' '결심'한 까닭에 관해

 

 

※ 영화 <헤어질 결심>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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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결(決)의 축적이다. 한 사람의 시간 안에는 무수한 분별과 결정, 결단이 차곡차곡 쌓인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당장 오늘 끼니도 무엇으로 때울지 정해야 먹을 수 있다.

 

영화 매체로서의 물리적 시간, 즉 러닝 타임 또한 마찬가지다. 최종 결론 도출에 도움이 될 법한, 선택된 숏들이 상영시간 안에 빼곡히 들어찬다. 이 숏들이 영화라는 유기체 덩어리를 구성하면 영화는 체계 안에서 분류된다. 책꽂이에 꽂히듯 마이 추천 리스트에 정렬. 장르별, 키워드별, 감독별, 배우별 선호도 따위로.

 

영화 <헤어질 결심>이 분류될 자리는 거의 정해진 듯보였다. 남편이 죽은 여자(서래), 그 여자를 바라보는 형사-남자(해준), 훔쳐보기, 이끌림, 로맨스 또는 느와르의 어딘가겠지. 혹은 둘 다거나. 역시 팜므파탈, 파멸하는 형사, 박찬욱표 대사, 그러다, 어, 어? 마침내, 미결. 분류표를 걷어차고 안개 속으로 들어가 버린 역행.

 

역행하는 영화. <헤어질 결심>

 

미결의 주체는 서래다. 그녀는 훔쳐보기의 구도 안에 있고, 사람을 죽이고, 또 사람을 이용하지만 팜므파탈이라는 규격 안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는 반격의 멘트다. 그러면서 '독한 년'이 아니라 '몸이 꼿꼿한 사람'임을 알아챈 남자를 끌어안기까지 한다.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는 파격적인 고백처럼 들린다.

 

물론 이미 불쌍한 서래 씨는 여생을 감옥에서 보낼 생각이 없다. 도피. 어디로? 바닷가로. 바닷가는 영화에서 죽음을 장렬한 낭만으로 박제할 때 곧잘 찾아진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노킹 온 헤븐스 도어>, <타임 투 리브>, 심지어 박찬욱 본인의 <박쥐>까지.

 

그리고 최종 신(scene)에 이르러 두 번째 미결, 그녀는 바다에 가서는 땅으로 파고든다. 시신을 전시하고 쓸쓸함을 과시하던 관습에 안녕을 고한다. 관객한테나 해준한테나, 위로의 객체가 아니라 수수께끼의 창조자로 남고 싶은 듯하다. 도주의 완성이자 불멸의 사랑의 형태로서, 횡과 종이 뒤엉킨 트릭. 그렇게 서래는 해준에게 좌표를 찍을 수 없는 점이 되고 만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알 중 하나일 수도 있고 그조차 아닐 수도 있는. 사랑이 어떻게 그래요. 사랑은 원래 그렇다. 설명 못 할 무언가. 미결사건의 완성.

 

사랑, 설명 못 할 무언가. <헤어질 결심>

 

서래는 이 전무후무한 증발로써 그녀가 감당해야 할 수식어들을 최소한 물리적으로는 따돌렸다. 살인 혐의와 행정상의 생사 증빙은 물론, 남편 잡아먹은 (중국)년 따위의 껍질도 벗어젖혔다. '시신' 딱지조차 달라붙지 않을 거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이 우주에서 사라지는 가장 완벽한 방법. 서래는 오직 해준이 살아있는 동안의 어떤 얼룩으로만 남게 됐다. 로맨틱하지 않은 절통의 로맨스가 이제 막 시작될 참이다.

 

이건 엄연한 변종이다. <헤어질 결심>은 훔쳐보기라는, 영화의 근원적 본질에 한 발을 담근 채 최첨단 관계 맺기 도구들을 경유, 각종 계보를 잇는 똘똘한 최적자인 척은 다하다가, 어느새 달아나버린다. 러닝 타임이 다됐는데 결론은커녕 말없이 안개만 흩뿌린 꼴. 하나의 유기체로 똘똘 뭉쳐가던 숏들은 뿔뿔이 흩어져 조금 전과는 다른 표정들을 짓고 있다. 자신을 물과 흙에 동시에 가둔 살인자의 사랑&실종극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듯. 이제 이 영화를 꽂아도 좋을 책꽂이나 분류표를 우리는 찾을 수 있을까. 글쎄, 본 적 없는 '걸작' 코너 정도면 괜찮으려나.

 

그러고 보면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은, 영화를 보고 만드는 기존의 모든 습관과 헤어질 결심을 한, 박찬욱의 결별 선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결'이라는 '결'심. 마침내, 이질적인 무엇으로의 분화. 마침내.  erazerh

 

결국,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헤어질 결심] 누가 무엇과 헤어지고 싶었길래

'미결'을 '결심'한 까닭에 관해 | ※ 영화 <헤어질 결심>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라납니다. :) 시간은 결(決)의 축적이다. 한 사람의 시간 안에는 무수한 분별과 결정, 결단이 차곡차곡 쌓인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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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포)

 

‘잔혹’과 ‘순수’, ‘무규칙’과 ‘질서’, ‘야생’과 ‘문명’, 무엇이든, 세계를 두 겹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중간지대를 끼워 넣은 채 양측 간 ‘공명’의 가능성(또는 불가능성)을 시종일관 테스트해대는 영화.

 

단, 인물들은 심리적 토대가 거의 감지되지 않을 만큼 즉흥적으로 행동하는데, 그러다보니 ‘주체적 존재’이기보다는 감독이 상정한 판타지적 세계관, 그 안에 종속된 일종의 ‘말’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보랏빛 하늘 - 아름답되 위험천만한 농촌, 구수한 말투의 악, 스톡홀름과 롤리타 신드롬이 반반 깔린 정서, 이 정도면 이 바닥에서 꽤나 클리셰 아닌가. 그래서인지 핏방울 옆에 꽃잎을 그려 넣는 대목에선, (아마도 의도됐을) ‘이질적인 것들 간 조합에 따른 매혹성’ 대신 ‘예쁘게 그로테스크하지 아니한가?’ 따위의 자아도취부터 느껴진 게 사실.

 

코엔 브라더도 언급들 하는데 시체 나오고 무덤덤하면 맨날 코엔이래. 그 형제가 언제 이런 식으로 ‘자빠뜨리고’ 땡, 했나.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의아하지 않을 정도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빌드업’과, 다짜고짜 ‘넘어졌는데 죽음ㅇㅇ’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거리감이 있다는 것만 재확인.

 

아무튼 만듦새까지 안 가도 ‘그로테스크 순정극’ 유의 새로운 듯 낡은 정서나, 인간의 선한 면을 찾겠다는 관성적 의지 탓에 애초에 내 취향&윤리적 기준에서 탈선. 쩝.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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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난 진실들을 쥐고서 최종 숏으로

 

 

※ 『최종 S의 비밀』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Sequence), 신(Scene), 숏(Shot)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에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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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의 예술이다. 인물들은 카메라의 시선에 상시 붙들려 있지만, 짐짓 이를 모른 촬영 현장만이 세계의 오롯한 전부인 양 꾸며댄다. 어쩌면 누가 더 시치미를 잘 떼느냐는 시합. 그렇게 이 쌓이면, 한 편의 영화는 그 자체로 독립된 단일 체계, 즉 처음과 끝을 간직한 유사-현실 덩어리가 된다.

 

이 독립성과 완결성이야말로 건드려선 안 될, 이야기의 본질이 아닐까. 이야기는 외부에서 널리 보이고 읽히되 절대 간섭받거나 변경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훔쳐보고, (현실과) 겹쳐보고, (원본의 수정 없이) 이리저리 만지작거릴 거리가 이야기인 셈. 이때 관객의 자리는 프레임 바깥에 깔려있으며, 러닝 타임 내내 안으로 건너올 수 없다. 일반적으로는.

 

 

이 열릴 때가 있다. 배우가 카메라를 쳐다봄으로써 인물과 관객을 대면케 하는 것이다. 대개 훔쳐보기라는 근본 규칙을 깨야 할 만큼 간곡한, 어떤 신호를 프레임 바깥으로 내보내고 싶은 경우다. 그중에서도 <살인의 추억>(2003)의 최종 숏은 효력이 너무나도 강렬해 신호 보내기의 롤모델로 불리는 게 마땅할 정도.

 

송강호(박두만 역)는 이윽고 고개를 돌려, 파르르 떨며, 한쪽 눈을 살짝 찌그린 채, 카메라(관객)를 쏘아본다.정의사회 구현을 간판으로 내건 나라, 짝퉁으로서의 평화적 구조를 무대 삼은 범인. 거기서 비롯된 울분을 박두만의 마지막 얼굴에 응축해놓은 봉준호 감독은, “범인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리라 생각해서이런 엔딩을 준비했다고 밝힌 바 있다.

 

봉준호라면, 이 펄럭거리는 숏이 스크린을 찢고 나와 진범을 휘감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살인의 추억>의 최종 숏

 

 

, 한 번 열린 문은 닫을 수 없다. 관객을 바라봄으로써 영화와 실재 사이에 심리적이되 실질적인 다리 하나를 놓은 셈. 애초에 특정 사건을 직접 끌어안은 영화의 숙명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현실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다시 현실로. 그런데 이 현실에 천지개벽할 변화가 생겼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졌고, 애먼 사람 하나가 20년간 잡혀있었다.

 

10건으로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사건’, 14차에 걸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공식 명명(201912)

 
윤 모 씨, 8차 사건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죄 없이 복역 후 2009년 가석방(현재 재심 진행 중)

 

이 정도라면 영화 역시 한 번은 새로 고침해봐야 하지 않을까. 현실에서 영화로, 인식의 다리를 다시 건너보자. 물론 이 시점에서 봐도 숏들의 배치와 호흡은 경이롭다만, 떼 내기 어려운 의문점이 자꾸만 들러붙는다. 최종 숏이 클로즈업한 얼굴, 그 신호 보내기라는 막중한 임무를, 과연 박두만이 짊어져도 되느냐는 것. 요컨대 자격에 관한 물음 말이다.

 

- 윤 씨, 불법 체포·감금 가혹행위 고문 훈련된 자백 녹음 등 강압 수사에 못 이겨 (8차 사건) 허위 자백
- 윤 씨를 범인으로 특정하는 데 결정적 증거였던 국과수 감정서가 허위로 조작된 사실 확인
- 경찰, 이밖에 양손이 줄넘기로 묶인 초등학생(8)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숨겨 단순실종 처리형사계장과 형사 1명에 대해 사체은닉과 증거인멸 등 혐의 적용
- 화성 8차 사건 말고도 억울한 사연 '수두룩(연합뉴스. 201910)

 

비극의 백광호. <살인의 추억>

 

이토록 잔혹한 폭압과 위법은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박두만을 중심으로 충실히 재현됐다.(518일 재심 첫 공판에서 영화의 이 부분 일부가 상영됐다) 그는 손수 발자국을 찍어 증거를 생산했고, 이 타이밍이다 싶으면 고갯짓으로 조용구에게 (용의자를) 군홧발로 짓밟으라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무능과 조작으로 잘려나간상사와, 폭력의 증거로서 결국 다리가 잘려나간용구와 달리 영화 끝까지 살아남는다. 자연스럽게. 무능과 폭력에 한 다리씩 걸친, 한통속 혹은 중심임에도.

 

이는 영화가 박두만 안에 시대의 후진성과, 진범을 잡고자 하는 절절한 욕구를 동시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넉살부터 처절함까지 양 극단을 횡단할 줄 아는 송강호의 표정이 그걸 가능케 했음은 물론이다. ‘살이 불어터지도록종일 목욕탕에 들어앉아 남들의 그곳이나 보고 다닐 때, 강변에서 링거를 맞으며 지치고 고단한 ·외면을 풍경으로 드러낼 때, 유력 용의자(또는 영화를 보고 있을 범인)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며 냉소할 때, 우리는, 미흡했지만, 악의는 없는, 투박한 진심을 본다.

 

이건 아마도 당시 형사들의 갖가지 결을 두루 섭렵해야 하는, 극의 중심에 놓이도록 설계된 인물로서의 필연적 복합성일지도 모르겠다. 용구도 서태윤도 맡을 수 없는 자리. 그렇게 박두만은 후졌지만 호감은 가는, 이런저런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허용되는 캐릭터가 됐다. 물론 이 영화적 장치는 충분히 수용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숏에 이르러서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깊이의 얼굴-응시마저 창조케 했다.

 

송강호의 내·외면. <살인의 추억>

 

 

이후로 한참이 흐른 2019, 31년간 은폐된 시신의 존재가 떠올랐다. 8살 아이의.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껌뻑거림들. 진정하고 초점을 다시 잡아보자. 이제 후진 시스템과 후진 사람들 한결 더 도드라져 보인다. 재차 투박한 진심까지 가려면 전처럼 악의는 없는따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식어가 필요한데, 현실이 그걸 허락할 것 같지는 않다. ? 눈을 닦고 보니 그들의 목표는 진범 찾기가 아닌 자기 자리 보존이었으니. 악의가 없기는커녕 흘러넘칠 지경이다.

 

이렇게나 맹렬한 보신(保身)주의라니, 이러면 한나 아렌트의 저 유명한 진부한 악이상 가는 지위를 부여해드려야 마땅하다. 상상력이 모자란, 그저 시대의 부속품이 아닌, 이를테면 시스템의 설계자 같은.

 

물론 박두만은 특정 형사 한 명이라기보다는 형사들 면면의 집합체에 가깝다. 하지만 정육각형에 가까웠던 특성 중, 적어도 선의(善意)항목은 새로 드러난 사실들에 찔려 움푹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동시에 최종 숏의 강렬함이 그 선의로 마감된 박두만의 캐릭터성에 크게 빚졌음을 상기해보자. 이제 나는 그에게 분노자로서의 지위가, 외화면을 쏘아볼 송신자의 자격이 더는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 그에게 어울리는 곳은 프레임 바깥, 응시를 받아야 할 자리, 즉 범인의 근처 어딘가일 뿐이다.

 

피해자들은…. <살인의 추억>

 

 

<살인의 추억>은 여전한 걸작이다. , 특정 사건과 동기화됐다는 영화적 특성상 현실과의 호흡을 위해 세포를 지속해서 열어두고 있을 뿐. 시대의 맥을 그토록 잘 짚었는데, 지금 보니 그 땅 위에 진범의 것 외에도 악랄함이 층층으로 쌓인 형국. 상상의 달인 봉준호도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앞으로 악행의 구조는 점점 더 디테일하게 드러날 것이다. , 딱 보면 감이 온다던 그들은, 공소시효가 소멸돼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이춘재도 마찬가지. 밥도 잘 먹고 다니겠지. 말 그대로 살인의 추억.

 

하수구 안에는, 야산에는, 구겨져버린 여성들이 아직도 있다. 8살 아이를 포함한.

 

우리는 완전히 실패했다. erazerh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박두만에게는, 응시할 자격이 있었을까

[살인의 추억] 드러난 진실들을 쥐고서 최종 숏으로 | ※ 『최종 S의 비밀』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Sequence), 신(Scene), 숏(Shot)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에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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