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월 13년 만에 링으로 돌아온 브렛 하트. 그의 컴백 스토리도 레슬매니아26 빈스전을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된 듯하다. 중간 중간 마음에 안 드는 각본도 있었고, 브렛의 과거만 못한 연기력에 세월무상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두 발로 걸어' 컴백했다는 자체가 경이로운 것인 바, 지난 1~4월은 레슬링 보는 재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쏠쏠하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샤프슈터를 보지 않았나.

2. 약물 근육 덩어리들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운, 90년대 뉴 제너레이션의 심장 브렛 하트, 그리고 라이벌 숀 마이클스. 업계 사상 최악의 악연으로 엮였던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은퇴전을 치렀다. 그것도 위 사진처럼 서로를 향해 웃고 또 격려하면서. 이런 장면을 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모쪼록 브렛이 97년 기억 따위 훌훌 떨치고 남은 삶 보다 여유롭게 대하길 바란다(물론 숀, 님은 그 기억들 쭉 가져가세요. 브렛이 어쨌건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겠지만).

3. 브렛이 몬트리올 스크류잡으로 WWE를 떠나던 그 즈음, 나는 군대에 갔다. 그러니까 브렛의 석연찮은 마무리는 내 소년시절의 끝 무렵, 불만과 불안으로 점철된 그 세기말적 시간대에 엉겨 붙어 어떤 아련한 恨처럼 기억되고는 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브렛의 마지막 샤프슈터를 그토록 바랐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소원 성취. 프로레슬링이라는 '쇼'에서 '액션의 미학'을 발견케 해준, 내 소년시절의 히어로. 이제는 놓아드려도 될 것 같음. 잘 가세요.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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