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죽었습니다."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김문호는 경아의 죽음을 '여자의 죽음'이라 칭한다. '남자들에 의해 잘잘못이 가려지는' 삶을 살아야 했던 여자-경아. 비겁한 수컷들은 경아라는 '몸'을 욕정의 무대 위에 올려 소비하고는, 그녀의 영혼을 자꾸만 객체로서 박제시킨다. 시대는 그렇게 여자를 오독했고, 남근은 여성성을 재단하고 분류했으며, 그 중 몇몇은 용도 폐기됐을 터. 비열한 관계들의 거대함 안에서 무너져 내렸듯이, 경아는 거대한 눈밭에서 고향을 그리다가는 지쳐 쓰러져 잠든다.


# <별들의 고향>의 엔딩을 보고 아내는 펑펑 (정말 많이 펑펑!) 울었다. 왜 그리 서럽게 우느냐는 질문에 아내는 "경아가 너무 불쌍해서"라고 답했다. '경아, 안녕'이라는 친절하게도 큰 고전적 엔딩 자막(난 웃었다!)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계속 울었다. <너는 내 운명>을 보고도 감흥은커녕 불평만 늘어놓던 아내가 70년대 신파 멜로의 위력에 당하다니. 진짜 신파는 시공간을 훌쩍 뛰어 넘어버리는 것이던가. 당시와 유사한 이유로 여전히 불쌍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 한, <별들의 고향>은 또 다시 누군가를 울리겠지. 더 이상 불쌍하게 만들지도, 스스로 불쌍해지지도 않기를.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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