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맨' 랜디 새비지가 세상을 떠났단다. 주말, 주초에 인터넷과 담을 쌓은 관계로 이제야 소식을 접하게 됐다. 평탄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링 위에서는 굉장했던 사람. 당시에는 파격적일 정도로 스타일리시했던 복장/제스처, '폭발'을 가까스로 지연하고 있는 듯한 고유한 말투(링에서의 폭발을 위해), 위풍당당 행진곡과 아우러진 웅장하고도 화려한 등장, 빼어난 연기력, 플라잉 엘보, 그리고 엘리자베스.

한창 때 복용했던 약물이 원인일까. 내 어릴 적 영웅들의 삶이 이토록 짧을 줄이야. R.I.P.



WWF 슈퍼스타즈. 국민학교 때 여기에 투자한 돈·시간 꽤 되지 싶네. 마초맨의 이 클로스라인이 주던 쾌감이란!



반응형

'SPO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 한국시리즈 잡담  (0) 2013.11.02
레슬매니아27 리뷰 또는 잡담 + RAW 약간 + 브렛  (0) 2011.04.07
end가 아닌 and  (2) 2010.09.22
양준혁 없는 야구, 그 당혹감  (4) 2010.07.28


(스포일러 有)


1. '언더테이커 vs 헌터'는 상당히 좋았다. 물론 역대 레슬매니아의 전설적 매치, 예컨대 WM13 브렛-오스틴, WM12 브렛-숀, WM11 브렛-오웬, WM20 벤와-숀-헌터 등에 비해 경기 질 자체가 돋보였던 건 아니다. 경기 시간에 비해 실제 무브먼트는 적었고 두 사람 다 힘에 겨워 헉헉대기 바빴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거물 간의 격돌에서만 감지되곤 하는 팽팽한 공기, 그 밀도 높은 긴장감이 제대로 표현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다 하나씩 터지는 액션, 그 묵직함이란! 관록이란 바로 이런 거다. 헌터의 툼스톤 때는 정말 연승 끝나나 싶더라.

2. 언더테이커가 확실히 지쳐 보이긴 했다. 연출보다는 아무래도 실제상황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다음날 RAW에 아예 안 나온 것도 그렇고. 헌터는, 개인적으로 정말 몹시 싫어하는 선수지만, 경기 운영력과 연기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해머링과 스텀핑만으로도 명경기 제조가 가능한 몇몇 중 하나. 하긴 그렇게라도 해야지.

3. '에지 vs 델리오'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프닝, 월드 헤비급 타이틀전이 왜? 경기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훨씬 더 많은 볼거리, 이슈를 남겼을 텐데 아쉽다. 앞으로 타이틀은 델리오한테 넘어가고 에지-크리스찬 간 대립이 있을 것도 같은데, 솔직히 크리스찬이라면 에지가 잡 좀 해주는 게 맞다.

4. 존 시나와 미즈, 둘 다 스스로 경기 흐름을 생성하는 능력은 아직 초보적인 선수들. 그런 둘을 레슬매니아 메인에 넣었으니 경기 질이야 뻔한 것 아닌가. 메인이벤트는 당연히 테이커-헌터여야 했으며, 굳이 타이틀전으로 치르려 했다면 에지-델리오 쪽이 차라리 나았다. 그리고 혼자 살아남아 포효하는 엔딩을 왜 시합도 치르지 않은 락이 가져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괴하게 끝난데다 그 전부터 루즈하기 이를 데 없던 시나-미즈 전, 거기에 덧붙여진 락의 뜬금없고 이기적인 액션. WM9 호건 개입 이후 가장 눈꼴신 엔딩이 아니었나 싶다. 다음날 RAW에서의 악수, 내년 레매 예약이라는 개그는 현 WWE가 표류 중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건 뭐 감성적인 사춘기 소년 소녀도 아니고, 싸우기가 그렇게 수줍어서야.

5. 존 시나,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 WWE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6. 현 WWE 풀타임 선수 중 최고는 누가 뭐래도 CM펑크다.

7. 신 카라가 RAW에서 데뷔했다(스맥에도 나왔다 한다). 개인적으로 하이 플라이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워낙 기대할 만한 선수가 없어서일까. 이 친구는 은근히 신뢰가 간다. 아! 아름다운 체공시간.

8. 브렛이 몇 주 전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WWE에 악역으로 복귀한다면, 누구와 연합하고 또 누구와 대립하는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남긴 적이 있는데, 정말 돌아올지 어쩔지는 모르겠다. 딱히 그에게 어울리는 각본이 나올 것 같지도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온다면 하악. ⓒ erazerh


반응형

'SPO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 한국시리즈 잡담  (0) 2013.11.02
R.I.P. 마초맨  (0) 2011.05.26
end가 아닌 and  (2) 2010.09.22
양준혁 없는 야구, 그 당혹감  (4) 2010.07.28


1. 지난 1월 13년 만에 링으로 돌아온 브렛 하트. 그의 컴백 스토리도 레슬매니아26 빈스전을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된 듯하다. 중간 중간 마음에 안 드는 각본도 있었고, 브렛의 과거만 못한 연기력에 세월무상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두 발로 걸어' 컴백했다는 자체가 경이로운 것인 바, 지난 1~4월은 레슬링 보는 재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쏠쏠하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샤프슈터를 보지 않았나.

2. 약물 근육 덩어리들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운, 90년대 뉴 제너레이션의 심장 브렛 하트, 그리고 라이벌 숀 마이클스. 업계 사상 최악의 악연으로 엮였던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은퇴전을 치렀다. 그것도 위 사진처럼 서로를 향해 웃고 또 격려하면서. 이런 장면을 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모쪼록 브렛이 97년 기억 따위 훌훌 떨치고 남은 삶 보다 여유롭게 대하길 바란다(물론 숀, 님은 그 기억들 쭉 가져가세요. 브렛이 어쨌건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겠지만).

3. 브렛이 몬트리올 스크류잡으로 WWE를 떠나던 그 즈음, 나는 군대에 갔다. 그러니까 브렛의 석연찮은 마무리는 내 소년시절의 끝 무렵, 불만과 불안으로 점철된 그 세기말적 시간대에 엉겨 붙어 어떤 아련한 恨처럼 기억되고는 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브렛의 마지막 샤프슈터를 그토록 바랐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소원 성취. 프로레슬링이라는 '쇼'에서 '액션의 미학'을 발견케 해준, 내 소년시절의 히어로. 이제는 놓아드려도 될 것 같음. 잘 가세요. ⓒ erazerh


반응형

'SPO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nd가 아닌 and  (2) 2010.09.22
양준혁 없는 야구, 그 당혹감  (4) 2010.07.28
브렛 하트 컴백!  (2) 2009.12.20
2009 한국시리즈 잡담  (2) 2009.10.26
그러니까, 그가 돌아온다. 브렛 하트가 WWE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단다. 97년 '몬트리올 스크류잡' 때 WWE 링을 떠났으니 무려 12년 만이다. 계약기간은 2010년 1월 4일부터 4월 10일까지. 레슬매니아를 포함하는 데다 이전 사연도 사연인 만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실로 역사적인 스토리라인이 펼쳐질 전망이다. 게다가, 아! 어쩌면 한 경기 정도는 펼칠 수도 있다고 하니, 학수고대 끝에 이 얼마나 감개무량이란 말이냐. 빈스나 DX 정도와 대립할 텐데, 경기력이고 뭐고 허리를 부러뜨릴 기세의 그 샤프슈터를 한 번 더 볼 수만 있다면야, 내년 소원이 따로 없겠다. 최근의 WWE 같은 아동용 레슬링에 정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내 어릴 적 영웅이 돌아온다는데 그깟 아동으로의 퇴행 따위, 사실 일도 아니지. ⓒ erazerh


The Best There Is, The Best There Was, and The Best There Ever Will Be!


반응형

'SPO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준혁 없는 야구, 그 당혹감  (4) 2010.07.28
굿 바이, 히트맨  (2) 2010.04.18
2009 한국시리즈 잡담  (2) 2009.10.26
경축! 양준혁 341호 홈런  (0) 2009.05.10


짙은 턱수염에 검은 피부, 검은 팬티. 언제나 찌푸린 얼굴.

지난 7일 '배드 뉴스 브라운' 앨런 코지가 사망했더랬다. 향년 63세로 사인은 심장마비. 앨런 코지는 1976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했던 실력파 레슬러로, 역대 가장 악역스러운 악역 중 한 명으로 기억돼야 할 선수다. 보통 악역 기믹의 레슬러들이 서로 연대하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반면, 배드 뉴스 브라운은 그 누구와도 손을 잡지 않고 홀로 자신의 길만을 꾸준히 갔던, 진정한 의미의 깡패-악당 파이터였기 때문. 아마도 '스톤 콜드' 기믹의 원조 격이 아닐 런지.

피니시인 게토 블래스터(뛰어서 두발로 뒤통수를 차는 기술)를 작렬한 후, 넘어진 상대를 한 발로 밟고 폴승을 따내던, 그 시건방진 모습이 눈에 선하다. 88년 WWF 레슬매니아4의 배틀로얄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으며(곧바로 이어진 브렛 하트의 보복은 내가 브렛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됐더랬다), 역대 최초로 흑인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뻔하기도 했던, 알고 보면 경기력도 상당했던 알짜배기 레슬러.

커트 해닝, 브리티시 불독, 브라이언 필만, 오웬 하트, 밤밤 비글로우, 에디 게레로 등 프로레슬러들의 삶은 안타깝게도 짧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정말 '배드 뉴스'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 erazerh


반응형

'SPO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준혁 2000안타 달성하던 날  (6) 2007.06.11
마이클 조던 MIX  (2) 2007.04.07
연장 혈투 '삼성과 한화의 KS 3차전'  (14) 2006.10.26
드디어 성사된 '삼성과 한화의 KS'  (12) 2006.10.18


8월 15일 캐나다에서 벌어진 Raw에서 숀 마이클스가 호건에게 샤프슈터를 (매우 어정쩡하게) 걸고 있는 꼴사나운 모습은, 필연적으로 한 선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비록 직접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의 테마가 울려 퍼졌을 때의 감격이란!).

헐크 호건이 이기네, 워리어가 이기네, 혹은 마초맨이 오락에서 가장 좋으니 실제로 마초맨이 제일 세다는 등, WWF 슈퍼스타들의 내공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초등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시절, 역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헐크 호건도 워리어도 아닌 '브렛 하트'라는 선수였다. 레슬매니아 4(아마도 88년)였던가. 배틀 로얄에서 "배드 뉴스" 브라운에게 배신당해 준우승에 머물고 만, 한 젊고 잘생긴 선수가 분을 이기지 못해 브라운을 묵사발내고 우승 트로피를 다 부숴버리는 광경을 본 나는 그 젊고 잘생긴 선수의 팬이 되리라 결심했으니, 그의 이름이 바로 브렛 "히트맨" 하트(Bret "The Hitman" Hart)였다. 이후 상당기간 동안 'Hitman'의 뜻을 '인기가 많은 사람' 정도로 착각하고 살기는 했지만.

릭 플레어를 꺾고 처음으로 챔피언에 오른 것을 비롯해 5차례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브렛의 경기력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역대 최고의 경지였다(프로레슬링은 물론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쇼다. 하지만 액션의 수준에는 분명히 차이가 존재한다. 현재 WWE에서 경기력 뛰어난 선수를 꼽으라면 크리스 벤와, 커트 앵글 정도..). 97년 서바이버 시리즈의 '더블 크로스' 사건으로 '안 좋게' WWF를 떠나기 전까지... 브렛 하트는 악역이든 선역이든 맡은 바 역할에 끝까지 최선을 다 했던, 극강의 테크니션이자 프로 중에 프로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현재 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그를 링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뇌진탕에 오토바이 사고 등 갖가지 불운이 그를 괴롭힌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링에 오르기에는 여전히 그의 몸과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듯하다. 57년생이라는 나이도 걸리고... 그러나 많은 올드팬이 그렇듯, 나 역시 단 한번만이라도 브렛의 검은 가죽재킷과 선글라스를, 그리고 마지막 샤프슈터를 보고픈 소망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 erazerh

The Best There Is, The Best There Was, and The Best There Ever Will Be!


반응형

'SPO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풍당당' 양준혁, 이번에는 최다루타에 도전!  (3) 2006.05.21
잠실야구장, 올해 첫 방문  (10) 2006.04.17
매직 vs 조던  (16) 2005.09.25
올시즌 홈런왕은 누구?  (12) 2005.03.19

+ Recent posts

반응형